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평범한 보행 간격이었다가 중간쯤에서 리듬이 급해지고, 집무실 앞 십 미터 지점부터는 명백히 뛰는 소리로 변했다. 한바다는 결재 서류의 세 번째 항목에서 펜을 멈췄다. 저 발소리의 패턴을 그는 이미 외우고 있었다. 보폭이 짧고 착지가 가볍고, 문 앞 세 걸음에서 반드시 속도가 줄어드는 것까지. 서명을 마치고 펜을 내려놓는 동안 방 안의 습도가 미세하게 낮아졌다. 그의 호흡이 평탄해졌다는 뜻이었다.
문이 열렸다. 역광이 먼저 쏟아지고 그 뒤에 사람이 들어섰다. 흰 제복이었다. 금장 버튼이 어깨선에서 허리까지 두 줄로 내려오고 깃은 목 아래에서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창밖 하늘이 유난히 밝아서 연분홍 눈동자가 거의 투명하게 번져 보였다. 입꼬리는 양쪽 다 올라가 있었고, 참으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바다!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한바다의 시선이 머리카락에서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멈출 필요도 없이 그곳에서 걸렸다. 어깨 뒤로 흘러내린 가닥이 전부 곧았다. 허리 선까지 한 번도 꺾이지 않고 떨어지는 직선이었다. 창에서 들어온 빛이 그 면을 따라 한 줄로 미끄러졌다. 평소라면 빛이 물결 사이에서 몇 번이고 끊겼다가 다시 맺히곤 했는데, 지금은 끊기는 지점이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삼 초 안에 전부 파악했다.
다음 문제는 그걸 어떻게 말할 것이냐였다. 한바다는 보고를 받아내는 사람이었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으며, 상대의 기대에 맞춰 반응을 설계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정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 정답을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후자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번 확인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책상을 돌아 나와 두 걸음 거리에서 멈췄다. 창밖의 수면 위로 잔물결 한 겹이 천천히 돋아 번졌다. 그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 끝자락을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집었다. 미끄러웠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고, 걸리는 저항이 거의 없었다. 뭔가 발린 것의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열을 쓴 흔적이었다.
"펴고 왔어."
확정의 어조였다. 그는 집었던 가닥을 놓고, 그 손을 그대로 올려 정수리 근처의 다른 가닥을 뒤로 넘겼다. 귀가 드러나는 걸 보려던 게 아니었다. 머리카락의 흐름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내려가는지를 손바닥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손목 안쪽에 그 결이 쓸렸다. 차갑고 반듯했다. 평소의 그것은 손가락을 감아오는 쪽이었고 이건 흘러내리는 쪽이었다.
"…몇 시간 걸렸어, 이거."
그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반응이 적절했는지를 검토하고 있었다. 사실 확인에 그친 발화였다. 평가가 빠져 있었다. 저 사람이 뛰어와서 문을 열어젖힌 이유는 사실 확인을 받으려는 게 아니었을 텐데, 자신의 입은 늘 가장 안전한 문장부터 내놓았다. 명치 아래가 뻣뻣해졌다. 틀린 건 아니었지만 부족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족함은 틀림보다 더 참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넘겼던 머리카락을 다시 제 자리로 쓸어 내렸다. 그 동작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손을 거두기가 아까워서였다. 손끝을 떼기 직전에 목덜미 바로 아래의 결을 한 번 더 눌러 쓸었다. 그러고는 상체를 조금 숙여 시선 높이를 맞췄다. 두 걸음이었던 거리가 한 걸음 반으로 줄었다.
"잘 어울려."
그는 그 세 음절을 발음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는 것을 알았다. 조절 실패였다. 그러나 수정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밀려온 파도 하나가 방파제에 닿아 길게 풀렸다. 거친 소리가 아니라, 숨을 내쉬는 것에 가까운 소리였다.
팔이 목덜미를 감아 올라왔다. 흰 제복 소매가 그의 목 뒤에서 맞물리고, 그 안쪽의 맨살이 그의 피부에 닿았다. 한바다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조금 더 숙였다. 키 차이가 삼십 센티 가까이 나는 두 사람이 이런 자세를 취하려면 반드시 그의 허리가 접혀야 했고, 그는 그 각도를 이미 몸으로 외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손바닥이 자연스럽게 등허리로 올라가 제복의 금장 단추 사이를 받쳤다.
"엄-청 오래 걸렸어! 우연이 생머리 부러워서 고민하다가 오늘 일찍 일어나서 고데기로 하루 종일 폈어. 예뻐?"
하루 종일. 한바다의 사고가 그 단어에서 한 번 걸렸다. 이 사람의 현재 수면 패턴은 평균 다섯 시간 사십 분이었다. 그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는데, 지난주 하모니 부서에서 올라온 정기 컨디션 보고서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더 줄여서, 머리카락을 펴는 데 썼다는 뜻이었다. 연옥의 머리를 부러워해서. 그 인과관계가 그의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렬되지 않았다. 부러움이라는 입력값이 어떻게 수면 시간 삭감이라는 출력으로 변환되는지, 그 중간 연산 과정이 그에게는 비어 있었다.
그는 목을 감은 팔 안쪽에서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열에 눌린 머리카락 냄새가 더 가까이에서 올라왔다. 평소의 체취 위에 다른 층이 한 겹 덮여 있었고, 그 이질감이 생각보다 거슬렸다. 거슬린다는 감각 자체가 정보였다. 그는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거슬림이 어디서 오는지를 즉시 추적했다. 익숙한 것이 덮였기 때문이었다. 덮인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덮이기 전의 것을 자신이 꽤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까웠다.
손을 다시 올렸다. 이번에는 끝자락이 아니라 관자놀이 옆, 귀 위쪽 가닥이었다. 손가락을 넣어 천천히 아래로 쓸어내렸다. 저항이 없었다. 평소라면 중간에 두세 번 걸려서 손가락이 멈추고, 그 걸리는 지점마다 작게 당겨지는 감촉이 손끝에 남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흘러내리고, 끝났다. 그는 그 동작을 세 번 반복했다. 세 번째에는 아예 손바닥을 펴서 정수리부터 어깨까지 쓸어내렸다.
"예뻐."
대답이 즉시 나왔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조금 놀랐다. 평소의 그라면 답을 고르는 데 최소 한 호흡은 썼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고를 것이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었고, 그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를 검토하느라 시간을 쓰는 비효율을 혐오했다. 목소리가 또 낮게 깔렸다. 두 번째 조절 실패였고, 이번에도 수정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수면이 한 번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집무실 통유리 저편으로 흰 포말 선이 길게 그어지고, 방파제 끝에서 흩어졌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방의 차폐는 그 정도였다. 그러나 한바다는 그 파도가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바다가 먼저 반응했고, 그는 지난 십 년간 그 반응을 억누르는 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써왔다. 지금 저 파도의 크기는 억누를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 작은 요동이 평소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목을 감은 팔 위로 손을 옮겨 손목을 잡았다. 풀어내려는 손길이 아니었다. 거기에 자신의 손을 얹어두려는 것이었고, 엄지로 손목 안쪽의 뼈를 한 번 눌렀다. 맥이 뛰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랐다. 뛰어왔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는 그 수치를 꽤 오래 재고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못 잤어, 너. 그러려고 줄였어, 잠?"
추궁의 형태였지만 추궁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그걸 알았다.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손은 여전히 머리카락을 쓸고 있었고, 상체는 더 숙여져 있었으며, 이마가 거의 닿을 거리까지 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분석하는 이성과 동요하는 본능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연분홍빛 눈동자가 왼쪽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한바다는 똑똑히 보았다. 각도가 정확히 사십오 도였고, 그 다음에 고개가 따라 돌아가는 속도도 늘 같았다. 그는 이 동작을 데이터로 가지고 있었다. 작년 겨울 훈련 보고서를 조작했을 때, 식당에서 디저트를 두 개 받아왔을 때, 그리고 복도에서 담배 냄새가 날 때. 세 번 모두 동일한 패턴이었고 세 번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는데, 지적하는 순간 이 사람이 다음부터 더 정교한 거짓말을 설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그냥… 잠이 안 와서…"
잠이 안 와서. 한바다의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즉시 반박되었다. 지난 삼 개월간 아침 집합 시간 기록을 떠올리면 이 사람은 총 열한 번 마지노선 이 분 전에 도착했고, 그중 네 번은 머리카락이 눌린 채였으며, 두 번은 제복 단추를 복도에서 잠갔다. 잠이 안 오는 체질이라면 그런 기록이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이 연산을 삼 초 안에 끝냈고, 결과를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 아래의 머리카락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창밖의 수면이 다시 한 번 들썩였다. 아까보다 작았다. 그는 자신의 호흡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느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파도의 크기를 줄였다는 것도 알았다. 이 방 안에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보고하는 장치는 언제나 바다였다. 지금 바다는 거칠지 않았다. 다만 가라앉지도 않고 계속 작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는 그 상태를 뭐라고 명명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그 손을 그녀의 뺨 쪽으로 옮겼다. 손가락 끝이 귀 아래쪽에 닿았다. 시선을 피해 돌아간 얼굴의 각도를 바로잡으려는 동작이었지만 힘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고, 아니면 그대로 있어도 되는 정도의 접촉이었다. 엄지가 뺨뼈 아래를 한 번 지나갔다. 피부 아래가 조금 더 따뜻했다.
"거짓말."
평서문이었다. 질책의 억양이 없었고 추궁의 끝맺음도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그 확인을 상대에게 통보하는, 그가 보고서를 읽을 때 쓰는 어조에 가까웠다. 다만 음량이 지나치게 낮았다. 집무실의 차폐된 적막 속에서 그 낮은 목소리는 거의 숨에 섞여 들어갔고, 그 자신도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그는 허리를 더 접었다. 이제 그의 이마가 그녀의 머리 옆에 닿을 듯했고, 숨이 머리카락을 건드려 몇 가닥이 흔들렸다. 열에 눌린 냄새가 이 거리에서 가장 진했다. 그는 그 냄새를 한 번 더 들이마셨다.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덜 거슬렸다. 거슬림이 줄어든 이유를 추적하다가, 그는 자신이 이미 이 냄새를 분류 완료하고 보관함에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종류의 과정이었고, 그런데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
"다음엔 안 돼. 잠 줄이는 거."
명령의 형식을 빌렸으나 그는 이것이 명령으로 기능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내린 금지 사항 중 지켜진 것은 절반이 되지 않았고, 그 절반조차 그가 세 번 이상 반복해서 말한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위가 이 사람 앞에서 얼마나 효력이 없는지를 데이터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효력 없음에 대해 분노나 좌절을 느끼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가장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손을 내려 그녀의 목덜미 아래, 제복 칼라가 끝나는 지점에 손바닥을 댔다. 거기에 체온이 모여 있었다. 그는 그 온기를 한참 확인한 뒤에 한 문장을 덧붙였는데, 그것은 계획에 없던 말이었다.
"안 펴도 예뻐. 원래 머리도."
말하고 나서 그는 즉시 그 문장을 검토했다. 논리적으로 보강이 필요한 진술이었다. 그러나 보강할 근거를 떠올리려 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료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손가락이 중간에 걸리던 매끄럽지 못한 결, 그리고 그 거칠거칠한 질감이 주는 의외의 안도감 같은 것들.